도자기 수업

통일신라시대 우리의 그릇 질그릇

브라이어 2022. 12. 8. 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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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시대는 고구려, 백제를 통일한 신라에 의해 8세기에 통일 문화를 맞이하게 됩니다. 삼국의 다양성과 문화를 아우르는 시대라고 볼 수 있습니다. 통일 후 경주를 중심으로 귀족 문화와 불교문화가 전개되면서 질그릇과 생활 용기에도 많은 변화를 이루었습니다. 불교 사상이 통일신라시대의 질그릇에 미친 영향을 알아보고 질그릇의 특징을 알아보겠습니다. 

 

 

통일신라 시대의 화엄 사상과 정토 신앙 

왕권과 귀족이 추구하던 화엄 사상과 서민들의 정토 신앙은 통일신라시대의 사회와 사상적 배경이 되고, 예술문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아 많은 예술품이 제작되었습니다. 이 시대에 불교는 모든 백성에게 일반화되기 시작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불교를 받아들여 다양한 문화와 조화를 이루는 통합의 세계를 지향하고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탑모양골호-국립경주박물관소장

 

 

통일신라 시대의 불교 사상

 

 


통일신라는 삼국의 사회와 문화를 통합하여 하나의 세계로 문화를 이루고 발전하는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양성이 존재하는 가운데서 조화를 이루고 발전한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의상에 의해 왕실과 귀족 중심의 화엄종을 전파하고, '삼라만상 모든 세계가 부처에게서 나오고 부처에게 귀일한다'는 화엄 사상을 추구하고 전파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화엄사, 석굴암, 불국사, 다보탑, 석가탑, 에밀레종 등은 화엄 사상을 바탕으로 제작된 대표적인 문화재입니다.

이러한 화엄 사상이 뚜렷이 잘 나타나는 대표적인 예술 작품의 석굴암은 원형의 중앙에 부처가 삼라만상 우주의 중심임을 보여주듯 가운데 모셔져 있습니다. 인왕과 사천왕 등이 중앙의 부처를 둘러싸여 부처가 중심이 되어 하나의 조화로움을 공간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화엄사상을 보여주는 예입니다.

원효는 '나무아미타불'만 염불하면 극락의 세계로 갈 수 있다는 믿음을 전파하며, 교리를 몰라도 누구나 믿음의 신앙만 있으면 극락정토로 갈 수 있는 정토 신앙을 전파시켜 많은 백성들에게 극락정토를 의지할 수 있는 신앙을 널리 알렸습니다. 이전의 불교는 왕족과 귀족을 중심으로 한 신앙이 이루어졌다면 원효의 정토신앙은 가난한 자나 학식이 없는 자들에게도 신앙을 가질 수 있게 하며, 모든 서민들에게 일반화되기 시작하였습니다.


통일신라 시대의 질그릇의 특징


실용성을 추구한 그릇


이전의 그릇들은 굽이 높거나, 목이 길거나등 사용 목적에 비해 실용적이지 못한 그릇들이 주류를 이루고 만들어졌다면, 통일신라 시대에는 높은 굽에서 낮은 굽으로, 낮고 목이 짧은 생활면에서 가장 쓰임 있게 사용되는 실용적인 그릇으로 제작되는 게 가장 큰 특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발, 접시, 항아리, 합등은 오늘날까지에도 사용되는 형태들도 많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시대입니다.

인화문 질그릇


7세기 후반이나 8세기의 많은 그릇들에게서 인화문 장식이 나타납니다. 인화문이란 같은 문양의 도장을 획일화 되게 연속적으로 눌러 장식하는 기법을 말합니다. 불교 신앙의 장례 문화로 화장이 유행함에 따라 골호가 많이 제작되고, 특히, 8세기가 되면 완성미에 가까운 합의 형태가 나타납니다. 합의 용도로는 뼛가루를 담는 화장 용기로 많이 제작되고, 표면에는 인화 무늬 장식이 주를 이룹니다.

녹유도기 제작


질그릇 표면에 유약을 바르기 시작한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입니다. 녹유라는 유약은 납 성분이 함유된 것으로 낮은 온도에서 굽고, 녹색을 띠게 됩니다. 녹유 도기는 당시 중국에서는 채색 도기인 당삼채의 유행으로 왕실이나 귀족층에서 영향을 받아 사용됐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일상 용기보다는 골호, 제기, 와당 같은 그릇에서 사용했습니다.

도용의 제작


7세기 후반에는 전신의 인물상이 만들어졌습니다. 고운 자태를 하고 있는 여인상과 당시 당나라의 서역인으로 추정되어 보이는 문관 복장을 한 남자 도용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질그릇 인화무늬합-국립경주박물관 소장

선종과 질그릇


눈에 보이는 세계보다 보이지 않는 마음의 세계를 중요시하는 선종의 가르침이 등장하면서 불상, 탑등의 제작이 줄어들고, 장식적인 요소가 줄어듭니다. 그릇 표면을 꽉 채워 장식한 8세기와는 달리 9세기는 무문이 등장합니다. 장식 무늬에서 무문 위주의 질그릇이 등장합니다.

실생활에서 사용하기 편한 용기와 굽이 낮고 편평한 접시나 사발, 반원형의 병들이 만들어집니다. 통일신라시대의 유적인 안압지에서 출토된 유물들에서 보듯이 인화 무늬 또는 무문의 형태의 많은 질그릇이 출토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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